르브론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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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NBA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의 농구 선수. 주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9]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글로리아는 아버지 없이 르브론을 키워야 했기에 집은 매우 가난했다. 사실 글로리아는 미용실을 하던 홀어머니(르브론의 외할머니) 프레다 제임스와 함께 살 때는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르브론의 세 살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프레다가 세상을 뜨자 금방 가세가 기울었다. 스물 남짓한 미혼모가 친척도 없이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었던 것.
르브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르브론 본인은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글로리아는 르브론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고, 5살과 8살 정도의 시기에 집을 12번 가까이 옮기며 계속 전학을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12] 르브론 말에 따르자면 어린 아이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던 르브론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사람은 에디 잭슨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르브론의 어머니 글로리아의 남자친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고 마약 거래로 감옥을 다녀오는 등 르브론 모자에게 집안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잭슨은 르브론에게는 자상했고, 아버지가 없었던 르브론도 주위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시하고 잘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잭슨은 WWE를 보여주면서 르브론과 친목을 다졌는데, 르브론은 레슬러 중에 마초맨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이 에디 잭슨은 결국 르브론이 NBA에서 데뷔하는 것을 보지 못한채 글로리아 제임스와 헤어지는데, 그 이유는 바로 $775,000를 담보 사기로 얻은 것에 있다. 이로 인해 에디 잭슨은 3년형을 선고 받고 헤어진다. 잭슨은 그 후 음주운전과 같은 각종 사고에 휘말렸다.
2.2. 아마추어 시절 : 농구 역사상 최고의 유망주[편집]
그런데 르브론이 농구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커는 그를 농구 학교에 보내 제대로 농구를 배우게 했고[13] , 르브론은 여기서 시언 코튼, 드루 조이스 3세, 윌리 맥기 등의 친구들과 동향 출신인 키스 댐브럿[14] , 드류 조이스 2세 등 훗날 고등학교 은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Fab4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르브론과 친구들은 점차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AAU(Amateur Athletic Union) 8학년 이하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67-68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르브론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SVSM)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애크런에서 농구 잘하는 흑인 학생은 부틀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부틀에서는 초단신이었던 드루 조이스 3세를 받는 것을 거절했고, 친구와 계속 농구를 하고 싶었던 르브론은 조이스 3세가 SVSM 입학을 결정하자 미련없이 부틀 입학을 포기했다. 주로 가톨릭계 백인들이 다니던 SVSM은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지만 농구에서는 완전히 무명이었다.[15]
그러나 Fab4는 빈센트-세인트 메리를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주 챔피언으로 이끄는 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며 지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점점 몸이 자라던 르브론의 기량은 이미 고등학생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시합 중에 비트윈더렉 덩크를 작렬시킬 정도였다. 그는 3년이나 연속으로 오하이오 주의 미스터 배스킷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싹수가 보였다. NBA의 전설 중 하나인 빌 월튼[16] 은 르브론 제임스가 한창 고등학교에서 뛸 시기에(졸업시즌이 아닌) 그의 경기를 보고 "저 아이는 지금 당장 NBA에 가도 주전으로 뛸 수 있다." 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슬램매거진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다.
르브론의 고등학교 시절은 유례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했는데, 그는 사상 최초로 2학년으로서 미스터 배스킷볼[18] 에 선정되었고, 고작 2학년의 신분으로 USA 투데이가 선정한 All-USA 퍼스트팀에 올랐으며, 3학년 때는 게토레이가 선정한 전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는데 이것 역시 3학년으로선 역대 최초이다.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4년 동안(미국은 보통 4년제이다) 르브론은 오하이오주 미스터 배스킷볼 3회, 전미 미스터 배스킷볼 2회, 전미 올해의 선수상 2회란 말도 안되는 업적을 세웠다.[19]
이를 감안하면 위 월튼의 멘트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당시는 한해에 몇 명씩 고졸 NBA선수가 배출되던 시기이므로 전미 MVP에 선정되지 못한 선수들도 다수 NBA에 직행하곤 했다.[20] 즉 전미 MVP에 뽑혔다면 NBA급 유망주란 것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월튼이 이 멘트를 남긴 것은 2002년에 당시 3학년이던 르브론의 경기를 중계했을 때였는데, 이때 르브론은 키가 이미 6피트8인치로 1년 뒤 드래프트됐을 당시와 키가 같았다. 즉 월튼이 봤던 '3학년 르브론'은 이미 203cm에 근육질 체형인데다 압도적인 전미 최고의 고등학교 선수였다는 것이니 NBA에서 뛰기 충분한 실력이었으며, 팀구성에 따라 주전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21]
워낙 매스컴의 관심이 폭발하다보니 위기도 있었다. 2003년 제임스의 어머니 글로리아가 제임스의 18번째 생일 때 Hummer H2를 선물로 주었고,[22] 제임스 자신도 고가의 저지를 선물로 받아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긴 했지만, 다행히 2게임 결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낸 제임스는 졸업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 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워낙에 초월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던 르브론은 더이상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해서 2003년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고향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면서 르브론은 NBA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2.3. 선수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수상 내역[편집]
5. 주요 기록[편집]
데뷔를 매우 어린 나이에 했고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기 때문에 정규 시즌, 플레이오프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록을 쌓아 올렸다.
ALL- NBA 팀 19회 역대최다 수상[23]
ALL- NBA 퍼스트팀 13회 역대최다 수상[24]
NBA 역사상 통산 최다 득점자[25]
NBA 전 구단 상대로 40+득점 달성
서로 다른 3개의 구단에서 파이널 MVP 수상
5.1. 정규시즌[편집]
- 이 주의 선수상 수상횟수 역대 1위 (65회)[26]
- 이 달의 선수상 수상횟수 역대 1위 (46회)
- 출전 시간 현역 1위, 역대 3위[27]
- 통산 득점 역대 1위[28]
- 통산 어시스트 역대 4위
- 평균 득점 현역 1위, 역대 4위 (27.2)
- VORP 역대 1위 (144.05)[29]
- MVP 쉐어 1위
- 정규시즌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모두 수상한 5번째 선수[30]
- 통산 턴오버 역대 1위
5.2. 플레이오프[편집]
- 출전 시간 역대 1위[31]
- 통산 NBA 플레이오프 출전 경기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승리 경기 수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승리 시리즈 수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득점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스틸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턴오버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자유투 성공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필드골 성공 역대 1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3점슛 성공 역대 3위
- 통산 NBA 플레이오프 리바운드 역대 4위
- VORP 역대 1위 (33.9)
6.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르브론 제임스/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말말말 및 어록[편집]
From Saint Vincent-Saint Mary High School and AKRON, Ohio, Number 23, LeBRON JAMES![32]
[33]
This fall, man, this is very tough,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올 가을에는……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올 가을, 저는 제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가서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합니다.
2010년 7월 9일, The Decison show[34]
NOT 1, NOT 2, NOT 3, NOT 4, NOT 5, NOT 6, NOT 7...
“At the end of the day, all the people that was rooting on me to fail, at the end of the day they have to wake up tomorrow and have the same life that they had before they woke up today, They have the same personal problems they had today. I'm going to continue to live the way I want to live and continue to do the things that I want to do with me and my family and be happy with that. They can get a few days or a few months or whatever the case may be on being happy about not only myself, but the Miami Heat not accomplishing their goal, but they have to get back to the real world at some point."
("나의 실패를 고대하던 놈들은 그래봤자 내일 일어나면 이것과 상관없이 뼈빠지게 일하고 현실문제에 치여 살겠지만, 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들은 잠시동안 이것으로 위안을 삼겠지만, 히트는 그들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어느 순간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2011 NBA 파이널에서 패배한 이후 인터뷰. 일명 리얼월드 발언이다. 르브론 제임스의 안티가 세계적으로 급증한 사건이기도 하다.
In Northeast Ohio, nothing is given. Everything is earned. You work for what you have.
I'm ready to accept the challenge. I'm coming home.
오하이오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쟁취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위해 우린 뛴다.
나는 이러한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됐다. 난 집에 돌아간다.
2014년 7월 11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ports Illustrated)에 실린 르브론 제임스의 편지 中 마지막 문구들
CLEVELAND! This is for you!
2016년 우승 직후
8. 여담[편집]
- 마이클 조던과 비교가 많이 되곤 하지만 사실 르브론 본인은 조던빠에 가깝다. 조던빠 기질이 어느정도냐면 르브론은 원래 왼손잡이인데 조던이 오른손으로 슛을 쏘기 때문에 슛을 할 때 오른손으로 슛을 쏜다.[36] 또한 본인이 조던하고 맞붙는 합성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쓰고 있을 정도.'조던 막고 르브론 뚫고' 누구의 배경화면일까 2009년 11월 경에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을 NBA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어서도 마이클 조던을 폄하하는 발언을 오히려 하지 않고 조던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발언을 주로 하는 편이다. 코비를 필두로 한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슈팅 가드들이 조던의 거대한 그늘에 시달리며 "존경은 하지만 난 조던이 아니다." 는 식으로 조던과 매칭되는것에 대해 상당히 진저리를 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고 스타일도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그런 압박은 그다지 받지 않는 편인듯. 오히려 조던은 자신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발언하는 편이다.
- 조던 이후 최고의 농구선수라는 점에서 GOAT인 마이클 조던과, 역대 최고의 포워드라는 점에선 또다른 포워드 본좌인 래리 버드와, 포워드라곤 하나 사실상 장신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소화한다는 점에선 매직 존슨과 정말 꾸준히 비교가 이루어지는 선수이다. 또한 올타임 No.2 자리에 누가 더 어울리냐에 대해선 카림 압둘자바, 21세기 미 스포츠 내 최고의 스타성으로 인기를 양분했다는 점에선 코비 브라이언트, 2010년대 각각 동서부 최고의 선수라는 점에선 케빈 듀란트, 오랜시간 정점급 활약을 펼친 터줏대감과 10년대 중반에 혜성처럼 나타난 슈퍼스타의 대결구도라는 점에선 스테판 커리, 그가 우승과 MVP를 수차례 해내기 전엔 공수겸장 포인트 포워드의 대명사라는 점에선 스카티 피펜 등등 정말 별에 별 선수들과 비교가 이루어졌다. 커리어가 커리어이니 만큼 한명한명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선수들과 비교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고, 르브론의 커리어가 많이 진행된 시점에서는 사실상 맨 윗줄의 조던과의 비교가 가장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 새가슴 논쟁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데 2010-11 시즌 피크에 달했던 시기에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과 비교되면서 조롱받아야 했다.[37] 하지만 바로 다음시즌 2011-12 시즌을 기점으로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에서 이런 논란을 일축할 만한 대활약을 선보이며 이런 반응들은 대부분 가라앉았다. 특히 2016 파이널에서 3-1 상황에서 3연승을 하며 역전승을 거두고 특히 7차전에서 클러치 상황의 블락까지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가슴 논란을 완전히 떨쳐버렸다.
- 실제론 르브론은 마이애미 시절을 제외하곤 리그 최고 수준의 클러치 플레이어였다. 2000년대 이후 플레이오프 버저비터 위닝샷 갯수 독보적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고(2018년 기준 5개) 4쿼터 득점 역시 매시즌 상위권을 차지한다. 다만 클러치 상황에서 르브론은 점퍼보다 자신의 강점인 돌파를 위주로 플레이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약하단 느낌이 없지않다. 다만 2018-19 시즌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기량 하락과 함께 클러치 능력도 다소 하락한 편.
- NBA 역사상 가장 자신의 몸에 많은돈을 투자하는 선수이다. 1년에 19억 이상을 신체관리에 쓰는것으로 알려져있다. 개인 피지컬 트레이닝 물론이고 가장 선수들이 싫어하는 시즌, 비시즌의 엄격한 식사제한이다. 르브론도 사람인지라 20대초반에 햄버거나 피자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20대 중반 후반으로 갈수록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걸 깨닫게 된다. 208cm에 거구에 체중관리를 하지않으면 몸을 날렵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걸 알게된것이다. 이러한 체중관리로 그는 선수생활 내내 무릎과 하체쪽 부상을 방지할수 있었다. 32세 시즌인 2016년에는 설탕, 탄수화물, 유제품을 60일 넘게 끊고. 고기, 생선, 과일류를 섭취하는등 그는 꾸준하게 식사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 뿐만 아니라 르브론은 비시즌 기간에도 상대 선수의 압박을 견뎌내기 위한 근육갑옷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밸런싱, 균형훈련을 모두 소화하며 20년 넘게 자기 자신을 관리한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르브론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한국나이 40세 시즌때 압둘자바의 득점을 넘을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 BANANA BOAT BROTHERS 중 한 명이다. 넷 다 드림팀에서 같이 뛴 적도 있고 사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NBA 같은 비즈니스적인 성격이 강한 곳에서 유별나게 특이한 케이스이다. 르브론은 커리어가 끝나기 전에 한번 서로 뭉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 카이리 어빙과의 케미가 워낙에 좋았고, 흡사 유사부자관계수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2014-15 시즌 초반에는 르브론과 어빙 간에 볼배합 문제로 인해 손발이 안맞고 그로인해 르브론이 공격 과정에 별 다른 적극성을 띄지 않는 모습을 연출하자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이때 모 커뮤니티의 한 르브론 팬이 "르브론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라며 별 문제없는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를 본 NBA 갤러리에서 조롱하는 의미로 '르버지'라는 별명을 만들어냈다. 아들빙이라는 별명도 이러한 맥락으로 파생된 것.[38]
- 경기중에 멘붕한 모습이나 오프시즌의 행사 참석 모습을 두고 NBA 갤러리에서는 짤방제조기, 개념글 치트키로 취급받고 있다.
- 클리블랜드를 떠났을 때의 움직임이 이미 계산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르브론의 샐러리를 안고는 프리 에이전트를 끌어들이기에는 무리가 있고, 클리블랜드 자체가 작은 시장이라 대스타가 오지 않는다는 점도 있어서 르브론을 가지고도 클리블랜드는 거듭거듭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었다. 게다가 르브론이 억지로 탱킹을 하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은 클리블랜드가 상위 픽을 받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르브론이 떠남으로 팀이 자유롭게 탱킹을 하고 상위 픽으로 젊은 유망주를 뽑은뒤 어느정도 안정된 후에 르브론이 컴백하면 자연스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이애미 시절처럼 빅3나 최소한 스탁턴-말론의 픽앤롤 듀오를 만들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클리블랜드에게 어빙을 뽑은 픽이 상당히 낮았는데 어빙을 뽑은점이나 르브론이 떠나는 과정에서 엄청 욕을 먹었다는 점에서 결과론적인 말에 가깝다. 팀 전력을 강화시킬 목적이라면, FA로 떠나는것보단 자신을 대권후보 팀에 트레이드 매물로 쓰는게 더 나았을 것이다. 르브론 자신이 트레이드 카드였다면 몇 년치 1라운드 유망주와 벤치 에이스 다수는 기본으로 받았을 터. 또한 팀에 복귀할 생각이었다면 디시전 쇼같은 삽질로 욕을 굳이 먹을 필요도 없었다.
-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르브론이 디시전 쇼를 한 계기가 있다. 당시 쇼 방송을 했던 방송사가 르브론의 FA 상황이 상당한 화젯거리가 된 탓에 방송 기부금은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쓴다고 르브론을 꼬드겼고, 르브론은 이 꼬드김에 넘어가서 디시전 쇼를 하게 된 것. 르브론이 먼저 계획한 쇼가 아니였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에 눈이 멀어서 고향 팬들을 생각하지 않고 방송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게다가 기부를 하고 싶었으면 대부분의 농구선수들이 하는 자선경기나 다른 이벤트, 심지어 본인이 사비를 털어서 기부하는 등 수많은 방법이 있었으나, 굳이 이런 쇼를 하기로 한 것이다. ESPN이 아이디어를 냈다고는 하나 르브론의 고용주는 물론이고 스폰서도 아닌 ESPN은 르브론에게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지 않았다. 르브론도 신인도 어린 선수도 아닌, 비지니스 마인드가 투철한 베테랑 NBA선수인데 누가 누굴 꼬드긴단 말인가? 정확히는 꼬드겼다기보다는 제안했다고 해야 한다. 결국 이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니라고 하나 이런 방식의 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이고, 이에 따른 책임도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물론 디시전 쇼는 원 소속팀인 클리블랜드의 팬 중 일부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 있으나 어떠한 종류의 범죄에도 해당되지 않고 리그 전체를 위한 흥행 요소로 작용하는 슈퍼스타의 쇼맨십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기에 도덕적인 책임이 있는지도 애매한 부분이다. 르브론은 이미 FA 자격을 획득하였고 팀을 떠날 것을 결정하였기에 디시전 쇼를 하든 말든 원 소속팀인 클리블랜드의 팬 중 일부의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르브론은 요즘 NBA 슈퍼스타들의 FA 전 이적을 위한 태업 행태와는 다르게 계약기간 동안 태업 이슈 없이 성실하게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후 FA로 이적하였기에, 디시전 쇼를 문제시하기 위해서는 디시전 쇼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부터 증명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계약을 성실하게 끝마친 스포츠 선수가 이전 소속팀의 모든 팬들의 기분까지 살펴야 할 의무는 없다. 르브론은 디시전 쇼에서 이적을 발표했을 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대해서 어떠한 비난이나 비하도 하지 않았다.[39]
- S급 선수임에도 파울콜이 짠 편이라는 의견이 있다. 공격비중의 절반이 돌파인데도 반칙을 잘 안불어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2017-18 시즌에는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해졌는데, 2017년 11월29일 열린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파울을 너무 안불어주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재밌는것은 그의 농구 커리어 15년 동안 최초의 퇴장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트레블링 콜은 상당히 후한 편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많다.
- 현 NBA 최고의 슈퍼스타인 만큼 많은 젊은 선수들의 우상이기도 한데, 실제로 루카 돈치치의 농구 우상이기도 하다.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르브론과 MVP 경쟁을 한 2019-20 시즌 이후 한 인터뷰에서 르브론이 현재 최고의 선수이며 그를 어린 선수일 때 보는 것이 자신에게는 조던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 어린 시절 프로레슬링을 즐겨본 팬으로[43] 2003년 데뷔 1주일 차 밖에 안 됐던 만 18세 시절 WWE RAW를 객석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2015년 트위터를 통해 좋아하는 레슬러가 누구인지 질문을 받았는데 얼티밋 워리어, 스팅, 릭 플레어, 리전 오브 둠을 꼽았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프로레슬러들을 종종 언급하기도 하는데 2016년 WCW 아이콘이었던 스팅이 WWE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자 축하 인사를 건넸으며 **, 또한 2020년 리전 오브 둠의 멤버였던 애니멀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태그팀이었다며 호크와 애니멀은 영원할 것이란 추모글을 적었다.** 2021년 3월 16일에는 스티브 오스틴의 3장16절 프로모를 기념하기 위해 WWE에서 행하고 있는 3:16 Day 기념에 동참하여 LeBron 3:16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 다만 공무, 즉 자신의 경기를 앞두고선 칼같이 차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6-17 시즌 개막전 당시 언더테이커가 클리블랜드 홈경기에 초청을 받아 클리블랜드 선수단 라커룸 밖에서 대기한 적이 있었는데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 리처드 제퍼슨, 케빈 러브 등 여러 선수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르브론은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꽤 젊은 나이부터 탈모가 시작되어 상당히 진행되었다. 아들이 이발하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머리가 매우 부럽다는 발언을 하고 조던과 비교하는 기자의 질문에 우린 둘 다 대머리라고 농담할 정도로 본인도 꽤 탈모가 신경쓰이는듯. 노장이라 불려도 무리없는 최근에는 머리를 심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점점 한계가 오고 있다.
- 2014년 ESPN 기사, "LeBron James' Greatest Weapon Is His Brain"과 르브론의 팀 동료들, 측근들에 따르면 사진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44] 가끔 옛날 농구 경기를 틀어놓으면, "어, 1997 파이널 2차전이네," 라며 매번 알아맞추고, 미식축구 경기를 볼 때면, "어, 저 코너백은 몇년도 몇번째로 어떤 팀에 드래프트됐어" 라며 세세한 점들까지 기억해낸다고 한다. 함께 비디오게임을 해도 르브론 혼자 모든 기술들을 외워서 매번 이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은 2007 파이널 등 자신이 실패했을 때까지의 기억까지도 너무 생생나게 기억나게 하여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잦았다고도 한다. 노비츠키와 댈러스에게 패배한 2011 파이널이 그 대표적인 경우. 2011년 이후로 르브론이 플레이오프 때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을 전부 끊는 것도 기억력이 이유라고 한다.관련 링크
- NBA가 사무국과 선수노조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2011-12 시즌 일부를 쉬게 되자 부업을 찾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난데없이 10월 초에 트위터를 통해 프로 미식축구리그인 NFL의 FA계약 마감일을 물어보면서 뉴스거리를 만들더니, 1주일 후엔 시애틀 시호크스의 피트 캐롤 감독과 대화를 주고받았다.[45] 물론 진짜 미식축구로 전향할 가능성은 없다. 그런 격렬한 스포츠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NBA 커리어는... 그래도 사람들은 인류최종병기 수준 피지컬의 타이트엔드를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이유로, NFL의 캘빈 존슨, NBA의 드와이트 하워드 등과 함께 다음 이종까페나 격갤같은 이종격투기 커뮤니티에서 가끔 발생하는 피지컬 괴물(격투기능력이 아니라 순수한 운동능력을 말한다) VS놀이 떡밥에 고정 등판하는 선수.
-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2007년 뉴욕 양키스와 고향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가 열렸을 때,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제이콥스 필드(2008년부터 프로그레시브 필드로 개명)에 양키스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양키스를 응원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고향팬들에게 욕을 왕창 얻어먹었다. 절친한 관계인 CC 사바시아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FA로 풀리자 양키스로 가라고 권유한 것도 바로 르브론. 비슷하게 사바시아도 르브론한테 뉴욕 닉스로 가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 리버풀 FC의 서포터이다. SNS로도 종종 리버풀을 응원하는 글을 올리고 2011년에는 안필드를 방문해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받기도 했다. 또한 리버풀의 지분 2%까지 보유하고 있다.
- 2013년 9월 14일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 서배나 브린슨과 결혼했다. 사실 진작에 자식도 둘 있는 사이.
- 특이하게도 자신이 직관한 클리블랜드의 많은 경기에서 승리한다. 예를 들어 2016년 8월 19일에는 고향 연고지 야구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경기를 관람했는데, 이날 인디언스는 끝내기 동점 홈런과 끝내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승리했다. 10월 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서도 찾아왔으며, 이날 인디언스는 선발 코리 클루버의 호투와 타선의 힘으로 승리하여 시리즈 전적 2:0을 만들었다는 것이다.근데 구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일지도 모르는2016년 월드 시리즈 7차전은 직관을 갔는데도 졌다.
- 클리블랜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의 슈퍼스타이다 보니 정작 자신은 농구선수인데도 같은 연고지의 슬픔을 제조하는 팀의 저지 판매량 상위권에 들어가고 있다.
- 건강을 위해 매일 와인을 반잔씩 마신다고 한다. 이건 르브론만 특이한 건 아니고, 레드와인이 심폐 기능에 좋다는 이유로 NBA 대다수 팀들은 선수에게 매일 레드와인 반잔을 마실 것을 권유하곤 한다.
- 미국 내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디시전 쇼 등을 통해서 안 좋은 이미지가 약 4년간 있었으나 『아임 커밍 홈』을 통해서 클리블랜드에 복귀하고 그 과정에서 극적인 역전우승을 펼치면서 이미지가 개선되며 인기도 늘었다. 그러나 인기많은 선수 답게 안티지분도 상당하다.
1. 버락 오바마
2. 미셸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리아나
5. 비욘세
6. 르브론 제임스
7. 오프라 윈프리
8. 톰 행크스
9. 빌 게이츠
10. 세리나 윌리엄스
남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인
1. 르브론 제임스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빌 게이츠
5. 스테판 커리
6. 도널드 트럼프
7. 톰 행크스
8. 세리나 윌리엄스
9. 리아나
10. 미셸 오바마
여성에게 가장 사랑 받는 유명인 10인
1. 미셸 오바마
2. 버락 오바마
3. 드웨인 존슨
4. 리아나
5. 비욘세
6. 오프라 윈프리
7. 톰 행크스
8. 빌 게이츠
9. 세리나 윌리엄스
10. 르브론 제임스
2017년 본인이 직접 밝혔다. 조던이나 페니 하더웨이 같은 자신이 보고 자라며 동경하던 선수가 오른손으로 슛을 쏘길래 오른손으로 슛을 쏘기 시작했다는 내용, 마지막에는 왼손잡이라고 웃으며 말한다.[37] 다만 당시엔 꼭 조던이 아니더라도 상대했던 팀의 에이스가 클러치에 강한 일명 사기츠키. 디르크 노비츠키였기에 이런식의 비교는 피할수 없었을 것.[38] 여담으로 비록 르버지라는 별명이 멸칭에 가까운 별명이지만, 실제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르브론은 상당히 훌륭한 사람이다. 멀리 갈 것 없이 2018년 FA 자격을 얻었을 때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행선지로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고, 가끔씩 인스타에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시물을 올리는데 정말로 화목한 분위기를 자랑한다.[39] 이 변론의 요해는 두 가지인데 의무가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도덕에 있어서 약한 적극성을 긍정하고 있다. 그리고 디시전 쇼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는 것은 클리블랜드 팬뿐이라는 주장과 동시에 어차피 클리블랜드 일부 팬은 기분이 상할 것인데 르브론이 그 일부 클리블랜드 팬을 기분 상하게 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두 가지 부분을 애매하게 섞어서 주장하고 있는데 최소한 일부 클리블랜드 팬은 어차피 기분이 상할 것이며, 르브론이 그 일부 클리블랜드 팬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뿐이라며 일부라는 말을 이상하게 사용하고 있고, 그 와중에 디시전 쇼로 인해서 클리블랜드 팬들만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어서 이 부분은 교묘한 궤변이라고 할 수 있다.[40] 초창기에 돌파를 통해 엄청난 갯수의 자유투를 얻어내던 마이클 조던은 가장 자유투를 많이 얻어낼 때가 야투 27.8개당 11.9개의 자유투, 2.3:1의 비율이었고 통산 2.8:1 정도의 비중이었다. 물론 조던은 지금보다 심판콜이 빡센 시절에 뛰었다.[41] 4쿼터 마지막 2분 3점차 이내 좁혀진 경기 대상[42] 하든 14.1%, 아데토쿤보 14.8%, 커리 21.7%, 레너드 19.0%, 웨스트브룩 16.7%, 릴라드 14.1%[43] 르브론의 10대 시절은 프로레슬링 역사에서 월요일 밤의 시청률 전쟁과 이후의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와 일치한다. 당시 레슬링의 인기와 위상은 현재와 비교도 안 될만큼 높았고 당시 레슬링을 즐겨보던 르브론에게도 이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44] 원문은 photographic memory인데, 사실 이는 직관기억력 (eidetic memory)를 지칭하는 데도 쓰이지만 구어체에선 "마지 사진처럼 엄청나게 기억력이 좋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스태프들이 크리스천 베일의 기억력을 칭찬하면서 "He has photographic memory"라고 언급한다. 창작물의 영향인지 완전기억능력이나 직관기억력 등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 이 단어를 쓸 때는 그냥 "말도 안 되게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애초에 직관력은 과거에 잠깐 본 시각적 이미지를 아주 세세하게 기억하는, 보고된 사례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학적으로 실존한다고 100% 증명은 아직 되지 않은 능력이다. 그런데 후술되는대로 누가 언제 드래프트되고 이런 거는 시각적 이미지와는 큰 상관이 없다. 베일이나 르브론이나 그냥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45] 캐롤 감독은 곧바로 '르브론'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제작하기까지 했다.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해서 클리블랜드에서 반응이 안좋을거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그렇지 않다. 헤어지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에서는 헌정영상을 틀어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46]
- 2 Chainz가 2019년에 발매한 신작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 르브론의 우승을 가장 많이 좌절시킨 스티브 커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리스트 시절 릅빠의 모습을 여러번 보여줬는데 우승 전이라 올타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까지 뽑히지않던 르브론을 뽑거나 우승 2회 때부터 올타임 탑5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감독시절에도 파이널에서 듀란트와 르브론을 이긴 후 듀란트가 최고냐 르브론이 최고냐 논쟁이 한창이던 때 인터뷰에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르브론이 최고라고 하는 등 계속해서 팬인증을 하고 있다.
- 딸 주리 제임스가 유튜브를 개설했다. 르브론도 간간히 출연 중이다.#
- 2020년 타임지 올해의 운동선수에 뽑혔다. 지난 2012년, 2016년에 이어 벌써 3번째.
-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지만 2021년 3월 보스턴 레드삭스, 리버풀 FC, 피츠버그 펭귄스 등이 소속되어있는 펜웨이스포츠그룹(FSG)에 5억 3600만 파운드 (한화 8500억원)을 투자하면서 16일부터 대주주로 활동할 예정임을 발표했다.
- 영화 스페이스 잼 2에서는 본인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영화의 흥행과는 별개로 전문 배우가 아닌 거치고는 연기도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2021년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남우 주연상으로 선정되었다. 이외에도 최악의 콤비상과 최악의 프리퀄/리메이크/표절/속편상까지 차지하였다.
-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억이 넘는다. 당연히 NBA 선수로서는 최초. 전 세계를 통틀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억이 넘는 계정은 단 34개에 불과하며 개인 운동선수로 범위를 좁히면 르브론을 포함해도 단 5개뿐이다. 이러나저러나 팬과 안티의 개념을 넘어서 르브론의 스타성이 전 스포츠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은 확실하다.
- 2022년 8월 15일 르브론의 사업적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제목은 주식회사 르브론 제임스로
이왜진르브론이라는 거대한 상품성을 지닌 선수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며 교보문고를 포함한 여러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중이다.
- 르브론 제임스의 얼굴 윤곽을 본뜬 걸로 추정되는, 변기가 존재한다. 해외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 너무 유명해진데다가 미국인이라서 한국 사람들은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부분이지만, 이름이 제법 특이한 편이다. 사실 성인 제임스 또한 성보다는 이름으로 더 많이 쓰긴 하지만, 그래도 성으로 쓰는 사람들이 없진 않아 그렇게 이상한 경우는 아니다. 그러나 LeBron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미국에서도 거의 없는데다가 그 형태 또한 굉장히 독특한 경우이다. 사실 프랑스 쪽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식 성씨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인데, 프랑스 식 성인 'Le Brun'이나 안달루시아 식 성인 'Le brón'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48] . 프랑스, 안달루시아 성씨이므로 이 동네에선 당연히 이름으로는 쓰질 않는다. 따라서, 르브론 제임스가 유명해진 2003년 전까지 아기에게 'LeBr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는 1년에 겨우 예닐곱 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단 한 명의 아이에게도 이 이름이 붙지 않았던 해도 많았다. 그러다가 르브론 제임스가 유명해진 후에 남자 아기들에게 이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가 제법 많아져, 해마다 3~50 명 정도의 아기에게 르브론이란 이름이 붙여지고 있고, 가장 많았던 2007년에는 110명의 아기가 르브론이라 이름지어져 최대치를 찍었었다.
- 2023년 1월 17일 휴스턴 로키츠전에서 자바리 스미스 주니어가 르브론에게 다가와 혹시 처음 NBA 출장하신 경기에서 저희 아버지랑 같이 뛰셨던거 기억나세요 ? 새크라멘토 킹스전이요 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르브론의 데뷔 경기인 2003년 10월 29일 경기 기록지를 보면 자바리 시니어가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에 르브론의 반응은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이 일을 언급하며 자신이 너무 늙은거 같다는 푸념을 장난스레 내놓기도 했다.
- NBA 선수들 중 크리스마스에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 현 소속팀 레이커스와 크립토닷컴 아레나를 공유하며 아레나의 권리를 가진 NHL팀 로스앤젤레스 킹스와 킹스의 퍼시픽 디비전 라이벌인 베이거스 골든 나이츠의 이름을 헷갈리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에 킹스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어떤 룸메이트는 설거지하는 걸 잊고, 어떤 룸메이트는 쓰레기를 버리는 걸 잊는다. 다른 이들은 당신이 거기에 사는 것조차 잊는다 🥲"라는 트윗을 올렸다.
8.1. Taco Tuesday!![편집]
르브론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이적한 후로부터 하는 르브론의 인스타그램 명물 중 하나. 매주 화요일 혹은 타코를 먹는 날에는[50] 웬만해선 빠지지 않고 가족, 혹은 팀원들과 타코를 먹을 때마다 외친다.
사실 "Taco Tuesday"는 제임스가 만든 말이 아니라 제임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말이다.
대략적인 패턴으로는
2. SIKE!![51] 오늘이 무슨 날이냐!
3. 카메라를 전환해 테이블의 게스트나 부엌의 가족들에게 what day is it today!?를 묻기.[52]
4. 카메라를 다시 전환 후 IT'S TACO TUESDAY!!!라고 크게 외친다.
5. 꺄꺄꺄꺄꺄꺄꺄우우!
대략 이런식. 그 유구한 역사를 보건대...
- 가장 기본적인 메들리 모음
- 하다하다 하우스 오브 하이라이트까지..
- 모교 행사에서도 한다!
- 스테이플 센터를 가득 메우는 타코 튜스데이 챈트[53]
- 르브론이 없으면 아이들이 한다
- 팀원들과 회식날에도 간단하게나마 해주시는 릅신
- 갈매기도 했다!(1)갈매기도 한다!(2)스페인어로도 한다![54]
- 네이마르도 했다![55]
-릅신의 감미로운 R&B 버전은 덤이다- - 코로나도 타코 튜즈데이를 막을 수 없다
- 결국은 미고스가 타코 튜스데이로 노래까지 만들었다
- 올랜도 버블에서도외쳐주는 릅신
이 때문에 이름에 타코가 들어가는 타코 폴이 화면에 잡히면 중계진들이 Tacko Tuesday!를 외친다. 이 덕인지 타코 폴도 이 드립을 본인 인스타에 스폰서십 받은 타코광고와 더불어 자주 써먹는다.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에서도 말미에 벅스 버니에게 해준다. 더빙판에서는 타코 먹는 날로 번역되었다.[56]
8.2. vs 마이클 조던[편집]
자세한 내용은 마이클 조던 vs 르브론 제임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출연작[편집]
- 모어 댄 어 게임(2008) - 주연, 기획
-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2015) - 본인 역[57]
- 스몰풋[58] - 궝기 역
- 나이키 광고 <르브론 제임스의 공포의 방(총 3편)> - [59]
-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 - 본인 역, 제작
- 비커밍: 꿈으로 가는 길 - 제작